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았다 hk****2018.06.18

내년이 정년인 경비원이다. 워낙에 박봉인지라 오래 전부터 투잡을 하고 있다. 그건 시민과
객원기자로 글을 쓰고 취재를 하는 것이다.

채택이 되면 고료를 받는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정해진 액수 만큼에서의 지불인 까닭에 아리
열심히 해봤자 받는 고료는 딱 정해져 있다. 따라서 기왕이면 여러 매체에 글을 올리는 것이
유리하다.

올 봄 모 언론사에서 시니어기자 공모를 했다. 이력서와 기타의 자료를 준비해서 보냈더니 서
류심사에 합격했다며 면접을 보러오라고 했다. 상경하여 면접시험도 가뿐하게 통과했다. 이어
선 오리엔테이션까지 받고 동료 기자분들과 술도 나눠 마시고 돌아왔다.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무려(!) 10건이나 되는 내 글이
그 언론의 메인에 걸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번 달에 이메일로 보낸 글들은 아예 읽지도
않았다. 담당기자의 업무태만이 느껴졌다.

그런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또 다른 기자의 안하무인 적인 고압적 피드백 멘트가 그만 심기를
건드렸다. 요약하자면 내가 보낸 글이 맘에는 안 차지만 자신이 글을 고쳐 살려놓았다는 일종
의 자기과시였다.

모멸감과 수치심이 동시에 교차했다. 연전 책까지 발간했는가 하면 유력 일간지에 칼럼까지
쓰고 있거늘 어찌 그리 나를 허수아비로 취급한다는 말인가! 구구절절 말하기도 싫어서 간단
하게 네이버 밴드의 기자들 공지난에 탈퇴 의사를 밝혔다.

편집장까지 나서서 만류했지만 이미 떠난 열차였다. “저는 일구이언 안 합니다. 그동안 고마
웠습니다. 명함은 내일 택배로 보내겠습니다.” “신경을 못 써 죄송합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왜 버렸냐고
따진다. 이에 김영철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며 외면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못 살아서 경비원으로 일한다지만 모욕감을 느낄 만큼 허투루 살아오진 않았다. 가수
이애란은 그의 출세곡 <백세인생>에서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
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고 했다.

평소 돈은 없으되 자존심만큼은 만석꾼 이상으로 갖춰야 한다는 마인드로 살아왔다. 그건 나
의 또 다른 신앙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시민기자 자리가 솔직히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내 알
량한 자존심만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나를 견고하게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자존심이
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넌 나에게 목욕 값을 줬어’가 아니라 “넌 나에게 모욕
감을 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