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가 아닌, 여자남자 이야기 worldlad***@naver.***2018.06.14

#_아빠가 말하다

지인의 소개로 딱 한번 다방에서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결혼을 했다. 그때가 1985년 12월 29일이었다. 첫 사랑과의 러브스토리를 영원히 좋았던 기억으로만 남겨두려 했지만 (첫 사랑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당시 C교대 캠퍼스 커플이었던 그녀와 데이트 후 집까지 바래다주다가, 집 앞에서 깡패를 만나 맥주병에 목이 긁히는 사건이 있었다. 30바늘 넘게 꿰맨 자국을 영광의 상처라 생각하고 끝까지 비밀로 남겨두고자 했었다) 눈치 빠른 엄마는 이미 상처에 대한 모든 내막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스물 다섯 살이던 여자(지금의 아내, 그러니까 나의 엄마)와 만나게 된 건 셋째 형수의 권유에 의해서다. 몇 가지의 이유로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와의 미래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셋째 형수가 약속을 잡아놨으니 선을 보라고 했다. 상대는 계 모임을 하는 친한 아주머니 남편의 동생, 그러니까 그 집안의 막내 아가씨라고. 처음 만났을 땐 긴장한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 뒤 다시 만났을 땐 ‘이 여자라면 괜찮겠다’싶어 고백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 한 장, 추억 한 장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스물일곱. 그때는 너무 몰랐다. 우리는 늘 어색했고, 서툴렀다. 나는 아내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운 철없는 남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 욕심과, 내 즐거움이 먼저였던 이기적인 신혼을 살았던 것 같아 늘 부끄럽고 미안하다.


#_엄마의 시선에 머물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4남 1녀 중 1녀의 역할을 했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채 등 떠밀 리 듯 결혼을 했다. 결혼 생각은 없었지만, 주변에서 “결혼을 하는 것이 효도하는 거다”라고 말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남자와 덜컥 결혼을 해버렸다. 설렘이라는 감정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날들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한번도 가본 적 없던 강원도 영월마을에서 ‘새댁’이라는 칭호를 선물 받았다. 남의 집 한 칸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에 이르렀을 때도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 당시의 본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꼬옥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낯선 곳에서의 삶을 눈물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러다 임신우울증이 찾아와 기찻길에 뛰어들어보기도 했지만 나의 엄마가 너무 생각나서 죽을 수도 없었고…. (울컥) 낯선 타지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남편밖에 없었는데, 기다려도 집에 오지 않는 그에게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신경질도 부리고, 따져보기도 했을 텐데 그 당시엔 그런 배짱도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고 우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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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2년을 견뎌낸 두 사람이 너무 예뻐서 오늘은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멋진부부, 더도덜도 말고 꼭 두사람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말이다.